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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감상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Normal_One 2018. 2. 24. 15:40


  이번에도 여전히 도서관은 가지 못했고 단칸방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가난한 월급쟁이인지라 서재에 꽂혀있던 예전에 읽었던 책 한 권을 꺼내 들었습니다. 꺼내든 책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였습니다.
 2014
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파트릭 모디아노 작가가 저술한 책으로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가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유대인 아버지와 벨기에인 어머니 사이에서 1945년도에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 당시 모디아노의 아버지는 유대인이라 박해의 대상이었고 어머니 또한 프랑스 국적을 가지지 못했기에 본명을 쓰지 못하고 이런 저런 가명을 써가며 도피 생활을 했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모디아노는 정체성 확립을 가장 중요시하게 여겼고 이에 대한 것들을 주제로 책을 썼다고 합니다. '평생 약간의 변주만 하였을 뿐 한 권을 책을 써왔다'라고 스스로 얘기했다는데 어쩐지 무라카미 하루키가 생각납니다.
 이 밑으로는 소설의 내용과 더불어 제 개인적으로 느낀 해석을 적을 예정으로 책을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이나,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바로 백스페이스를 누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가 담담하게 위의 문장을 읊조리며 시작합니다. 기 롤랑은 10년 전 기억을 잃어버린 후 위트라는 남자 밑에서 흥신소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위트가 은퇴를 하게 되며 기에게 흥신소 일을 물려주려고 하나 기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야 되겠다고 얘기합니다. 위트는 과거는 그저 과거일 뿐이니 미래로 나아가라고 하지만 기는 꼭 기억을 찾고 싶다며 과거에 대한 추적을 시작합니다. 여러 탐문 끝에 스티오파에게 두 장의 사진을 받은 기는 그 중에 자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프레디라는 인물이라 생각했던 기는 프레디 밑에서 일했던 로베르를 만나며 자신이 프레디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마침내 자신을 알아보는 엘렌을 만난 기는 자신이 페드로라는 인물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2차 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여러 개의 가명을 써가며 나치로부터 도망치던 페드로였음을. 그리고 경마 기수였던 빌드메르를 만나며 본인을 확실시하게 되고 그가 그의 연인인 드니즈와 친구 프레디, 프레디의 연인인 게이 오를로프와 함께 므제브로 갔음을 알게 되고 스위스로 밀입국하게 도와준다던 두 사람에게 속았던 사실을 알게 됩니다퍼즐 조각이 거의 완성되었으나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싶었던 기는 프레디를 찾아 나섭니다. 그러던 중 위트와 편지를 주고 받는데 위트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닌 과거라고 한 당신이 옳았다고 말해줍니다. 프레디를 찾아 나섰으나 프레디는 실종 된 상태였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싶지 않던 기는 마지막으로 로마에 있는 자신의 옛 주소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2번지'를 찾아 나서며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자신의 기억에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에 중요하지만, 과거는 지금까지의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중요할 겁니다. 제가 A라는 사람으로 살아가다가 갑자기 기억을 잃고 어느 사람이 나타나 너는 B였다고 하면 저는 B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작 중의 기 롤랑 역시 프레디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자신이 프레디가 되었으며, 페드로란걸 안 이후부터는 페드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기억이 아닌 타인의 기억으로부터 만들어지는 나 자신은 얼마나 명확할지 알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방점을 찍기 위해 기 롤랑은 자신의 옛 주소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2번지'를 찾아갔습니다
 
자신의 기억을 덤덤하게 찾으면서 므제브에서 두 사람에게 속아 드니즈를 잃어버린 장면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예전에 이 책을 잃었을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는데 그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어쩌면 예전보다 조금 더 공감 능력이 늘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기간 동안 책을 많이 잃었으니까요. 이전에 잃었던 때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어지간하면 한 번 본 책을 다시 잃어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가난한 월급쟁이인 저의 상태가 준 선물인가 봅니다. 감사하게 여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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