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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고 해서 두 차례 서점에 찾아갔을 때는 이미 다 팔린 후여서 삼고초려 한 끝에 사온 '오직 두 사람'을 읽었습니다. 책 내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책의 제목과 맨 앞장에 쓰여 있는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를 보고서는 마음 따뜻해지는 연애 소설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7편의 단편 소설들이 엮어 있었습니다. 공통적으로 소설 속에서는 뭔가를 상실한 사람들의 얘기가 적혀 있었고 상실 된 것을 찾기만 한다면 잘 돌아갈 줄 알았던 일상이 더 버티기가 힘들어 지는 모습이 보여집니다. 모든 단편들에 대한 감상을 적을 수는 없으니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아이를 찾습니다'를 통해서 감상을 적고자 합니다.
이 밑으로는 소설의 내용과 더불어 제 개인적으로 느낀 해석을 적을 예정으로 책을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이나,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바로 백스페이스를 누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명절을 앞 둔 어느 날, 윤석은 집 안에 드러누워 프로야구 경기를
감상하고 싶었으나 아내 미라가 대형 마트를 가고 싶어했기에 아들 성민의 손을 부여잡고 대형 마트로 향합니다. 유독
사람이 붐비던 대형 마트 안에서 윤석은 외부 임대 매장의 휴대폰 가게에서 휴대폰을 이러 저리 둘러보다 아들 성민이 타고 있는 카트를 잠시 손에서
놓게 됩니다. 선택한 휴대폰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 아내 미라를 부르려 뒤를 돌아본 윤석은 아내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윽고 또 다시 알게 됩니다, 아들이
타고 있던 카트도 없어졌음을. 아내가 끌고 갔을 거라 생각하고 아내를 찾았으나 아내는 화장품 매대에
갔다 왔는지 그저 화장품들이 담긴 쇼핑백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애타게 애를 찾기 시작했으나
한 번 사라진 애는 보일 기미가 안 보이며, CCTV를 확인했으나
CCTV는 대형마트 내부만 비출 뿐, 외부 임대 매장은 찍고 있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부부는 다시는 아이를 볼 수 없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 일이 있고 난지 11년 후 밤 근무를 마치고 온 윤석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옵니다. 이제 아들을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그 날도 여느 다른 날들과 같이 장난일거라 생각했으나 이번만큼은
달랐습니다. 대구 경찰서에서 결려 온 그 전화는 DNA가 99.9% 일치하는 아이를 찾았다며 아이를 데리고 가겠으니 기다리라고 합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어머니에게 아들을 찾았다고 얘기한 윤석은 이내 아내에게 얘기하려 하나 아내가 보이질 않습니다. 문이 열려 있는 걸 확인 한 윤석은 곧장 문을 박차고 나가 약수터로 향합니다.
익숙한 일이라는 듯 아내를 찾아나선 윤석은 곧 아내 미라를 발견합니다. 지난 11년간의 윤석의 삶은 전단지와의 싸움이었습니다. 아이를 찾기 위해 전단지를 수도 없이 가져다 붙였으며 이 일을 하기 위해 원래 다니던 회사도 그만 두고 야간
경비 일을 시작했습니다. 아내 미라도 처음에는 같이 도왔으나 얼마 안 있어서 조현병이 발병해버렸습니다. 직장에 다닐 때부터 직장사람들이 자기를 험담하는 것 같다는 소리를 하곤 했으나, 그 땐 몰랐습니다. 그게 조현병의 전주였었는지는.
두 명의 여성이 윤석 앞에 나타났습니다. 한 명은 경찰관이었고 한 명은 사회복지사입니다. 경찰관과 사회복지사는 이제까지 벌어진 일들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아이가
납치를 당했으나 문제는 아이가 납치를 당했다는 자각을 하지 못한다. 아이는 이제 껏 자신을 납치한 여자를
어머니로 알고 살아왔다. 납치를 한 여자는 50대의 중년
여성이며, 자신이 납치한 사실을 적은 유서를 쓰고 자살했다. 아이가
많이 혼란스러워하니 당황하지 말고 잘 대해줘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그리곤 아이를 데리고 옵니다. 성민이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윤석이 상상하던 14살의 성민과는
이미 많이 달랐습니다. 자신이 이제껏 뽑아온 전단지에 그려진 상상한 모습과는 전혀 달랐으며, 자신이 상상했던 체형과도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경찰관과 사회복지사가
간 후 윤석은 성민과 얘기를 나누려 하나 성민은 좀처럼 얘기를 나누려 하지도 마음을 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아들
성민이만 찾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 생각한 윤석에게 아름다운 영화 같은 결말은 없었습니다. 아내
미라의 조현병은 나을 기미도 보이지 않고 집 안은 화목하지도 않았습니다. 성민은 납치한 여자가 나이를
속인 덕분에 아직도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다니는 와중에 계속 사고만 쳤습니다. 그리고 결국 윤석이 야간 일을 나간 사이에 성민이 미라를 재대로 돌보지 않아 미라는 실족사 합니다. 장례를 치르며 지금까지의 울분을 처남과 장인어른에게 토한 윤석은 마지막으로나마 장례식에 성민이 오길 바라지만
성민은 끝끝내 오지 않고 장례식은 끝납니다.
장례식이 끝난 후 더 이상 현재 사는 곳에서 버틸 자신이 없어진 윤석은 성민에게 지금 집들을 모두 처분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자고
합니다. 성민은 어차피 마음대로 할 걸 아니까 마음대로 하라고 합니다.
윤석은 고향으로 내려가 밭을 일구고 살아갑니다. 그러던 와중에 고등학생이 된 성민은 어느
날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한 여자가 소형차를
이끌고 윤석 앞에 나타납니다. 자신을 보람이라고 소개 한 이 여자는 성민이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진 여자
아이였습니다. 그녀는 성민이 자신이 모은 돈을 들고 달아났다며 윤석에게 500만원을 요구합니다. 윤석은 대신 갚아줘야겠다는 생각에 현금 인출기로
가서 500만원을 인출했습니다. 그리고 전해주려 다시 보람을
찾아왔지만 보람은 없고 갓난아기만 덩그러니 차량용 카시트와 남아있었습니다.
7가지의 단편 소설은 위에 줄거리를 써둔 '아이를 찾습니다'와 마찬가지로 상실에 대한 사람들의 대처와 그 이후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직
두사람'에서는 아버지를 잃어버린 딸에 대해, '인생의 원점'에서는 잃어버린 첫사랑을, '옥수수와 나'에서는 창작욕구를, '슈트'에서는
아버지를, '최은지와 박인수'에서는 용기를, '신의 장난'에서는 자유를. 책
마지막 장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무언가를
상실한 이 후에는 상실한 것들 되찾더라도 이전같은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2014년에 진도에서
일어난 대참사를 겪은 부모님들처럼 말이죠. 그 중에서도 상실한 것들 되찾았으나 점점 더 무너지는 현실을
가장 잘 서술한 게 '아이를 찾습니다' 였습니다. 다시 아이만 되찾으면 아내 미라의 조현병도 해결되고 가정도 화목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윤석은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그런 윤석을 비웃듯이 더욱 냉정한 현실만이 눈 앞에 끊임없이 펼쳐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은
꿋꿋하게 버티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마 그는 또 꿋꿋하게 자신의 손자를 기를 것입니다. 그게 그 다음 얘기를 상상하는 제 바람이기도 합니다. 문득 지금
이렇게 적다 보니 '노인과 바다'가 생각났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자신의 배보다 큰 청새치를 잡은 노인이 얼핏 윤석과 비슷하다 여겨졌습니다. 온갖 고초에도 결국에는 청새치를 끌고 돌아간 노인처럼 인생의 남은 긴 레이스에서 윤석이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온갖 상실감과 좌절 속에 놓인 이름 모를 그대들도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노인과 바다에 나온 유명한 구절로 끝맺겠습니다.
인간은 파멸할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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