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의 축제
가난한 월급쟁이라 좁은 단칸 방 안에 오로지 책상에 달린 서재에만 의존해 책을 보관하고 있으므로 책을 더 이상 살 수 없는 지경이고, 어쩌다 보니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지도 못하게 되어 이전에 읽었던 책 들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책이 바로 '무의미의 축제'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마찬가지로 노벨 문학상에 근접해 있다고 평가 받는 밀란 쿤데라의 저서입니다. 다만, 무의미의 축제가 이전 소설로부터 14년 만에 나온 장편소설이고 이 후로 또 저서가 나오질 않는 거보니 노벨 문학상을 탈 수 있으실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밀란 쿤데라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소설의 제목들을 소위 말하는 간지가 나게 짓는 것 같습니다. 그의 이전 저서들인 '우스운 사람들'이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리고 14년 만에 나온 장편소설 '무의미의 축제'나 뭔가 제목에서부터 사람을 확 끌어 당기는 게 있습니다. 노래나 영화도 제목이 중요하듯이 청각이 중요하지 않은 소설이 제목이 중요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잘 만들어진 제목 안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감상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이 밑으로는 소설의 내용과 더불어 제 개인적으로 느낀 해석을 적을 예정으로 책을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이나,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바로 백스페이스를 누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소설의 시작은 주인공 중 하나인 알랭이 여자의 배꼽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시작됩니다. 여성의 성적 매력이 가슴이나 엉덩이에서 배꼽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시콜콜한 생각들로 시작됩니다. 그 뒤로 이 소설들의 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는 알랭과 라몽, 샤를, 칼리방이 모여 얘기하는 내용이 펼쳐집니다. 전체적인 소설의 내용은 라몽이 옛 직장 동료였던 다르델로가 라몽에게 암이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고선 파티를 열게 되는데 이 파티를 샤를, 칼리방이 준비하고 알랭과 라몽이 참석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시간의 흐름으로 꾸며져 있는데, 이 와중에 각각 네 명의 인물들이 하는 무의미한 일들이 펼쳐집니다. 알랭은 배꼽을 통해 어머니를 떠올리며 어머니가 자신을 왜 낳았는지를 상상하며 몽상에 빠집니다. 샤를은 스탈린이 얘기한 24마리의 자고새 얘기를 하면서 마지막에 천사가 등장하는 인형극을 상상합니다. 칼리방은 가난한 연극배우로 자기만의 가상의 파기스탄어를 만들어 자기가 파키스탄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며 속으로 웃습니다. 그리고 이 네 명과 함께 있음을 사랑하는 라몽은 소설 마지막에 다시 다르델로를 만나 그에게 무의미한 것 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며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무의미의 축제에서나 볼 수 있듯이 밀란 쿤데라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매우 가볍고 보잘것없으며 개개인의 하는 행동이 모두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함으로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미한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많은 인파 속에서 저라는 사람은 얼마나 가벼운 존재이며, 혼자 하는 쓸데없는 몽상들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깨닫곤 합니다. 다만, 저는 저의 그런 모습도 사랑하고 인파 속에서 다른 개개인의 얼굴을 보며 그들의 가벼운 존재와 무의미한 행동 들을 관찰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이 얼마나 거대한 무의미의 축제인지, 이 축제에 몸을 맡기고 즐길 수 있을 만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