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죽이기
매 년 노벨 문학상의 유력한 수상 후보로 꼽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었습니다. 그의 다른 장편 소설인 '1Q84'와 마찬가지로 권 당 무지막지한 장 수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 우악스런 양에도 불구하고 잘 읽히는 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들의 장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이렇게 잘 읽히고 매력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넘쳐나는 상징들과 모호한 주제 의식은 변하질 않는 것 같습니다. 김영하 작가님이 쓴 산문집 시리즈를 보면 '도대체 뭔 얘기야?', '말하려는 게 뭐야?' 이런 생각을 가지게 하는 작품의 주제를 찾기 힘든 작품들이 좋은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독자로부터 작가가 겹쳐 놓은 여러 겹의 레이어 위에서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대체 끝날 때까지 말하고 싶은 게 뭔지 알 수 없는 이 소설, 아니 그 뿐만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 다수가 김영하 작가님이 얘기하는 좋은 작품들 일 것입니다.
다만, 전작인 1Q84처럼 급하게 얘기를 거두어 들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또 판에 박힌 그 놈의 평범한 주인공, 주인공을 떠난 여자, 주인공과 불륜을 저지르는 유부녀, 평범한 주인공에 대비되는 비범한 능력의 주변 인물들 등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패턴들이 보인다는 점에서는 다소 식상 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가 최초로 모티브로 삼은 얘기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그의 소설들 거의 모두를 이와 같은 이야기로 풀어나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모두가 잘 아는 이야기로 계속 다른 소설을 써내는 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단한 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기사단장 죽이기'가 그의 작품의 집대성이라고 불리나 봅니다. 다만, 아직 집대성이라고 부르기에는 이를지도 모릅니다. 그의 다음 장편소설이 나오고, 또 다음 작품이 출간된다면 그 소설이 다시금 집대성이 될 테니 까요. 우리가 그의 작품의 집대성을 보는 일은 그의 사후에나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 밑으로는 소설의 내용과 더불어 제 개인적으로 느낀 해석을 적을 예정으로 책을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이나,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바로 백스페이스를 누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전반적인 소설의 줄거리들은 책 자체가 너무 길어서 요약해서 적으려 해도 앞서 리뷰를 했던 '검은 꽃'과 같은 대참사가 일어날 것 같아서 전체 줄거리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책을 읽으신 분들이 볼 내용이니 사실 줄거리가 없어도 상관은 없겠죠.
무라카미 하루키가 항상 소설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바는 현대 일본 사회에 만연해 있는 병폐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각성을 촉구하고자 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와는 맞지 않는 일본 사회에만 드러나 있는 병폐가 소설 속에 보여지는데, 소설 속 주인공은 딱히 모난 것 없는 전형적인 소시민이란 점입니다. 튀는 인물도 아니고 철저하게 사회의 수레바퀴 속에서 돌아가고 있는 인물입니다. 흔히 일본인들을 보고 예의가 굉장히 바른 민족이라는 의식이 있으나 사실 일본은 예의가 바른 게 아니라 눈치를 매우 많이 보는 민족입니다. 제한 된 규율 속에서 튀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미덕으로 주인공들은 대게 여기에 부합하는 인물들입니다. 기사단장 죽이기의 주인공 또한 아내로부터 이혼 요구를 통보 받고도 분노를 표출하는 게 아니라 방황을 이어갑니다. 문제점을 바라보고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부터의 도주를 택합니다. 그러다가 현실화 된 '이데아'인 기사단장을 만나게 됩니다. 기사단장은 일본화의 거장인 '아마다 도모히코'가 그린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현실로 튀어 나온 존재입니다. 이 그림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었는데, 아마다 도모히코가 독일 빈에 있을 당시에 비밀결사 조직에 있었고 나치의 간부 중 하나를 암살하려 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비밀결사대는 간부 암살에 실패했고 정치적인 이유로 살아 남은 아마다 도모히코를 제외한 나머지 조직원들은 모두 끔찍한 고문 속에 죽임을 당합니다. 그 후 말년에 마지막 힘을 모두 모아 사건의 진실이 담긴 기사단장 죽이기를 그리고 다락방에 숨겨둔 후 아마다 도모히코는 치매에 걸립니다. 이를 아마다 도모히코의 병실에서 실제로 주인공이 식칼로 기사단장으로 분한 이데아를 찔러 죽임으로 아마다 도모히코를 번뇌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아마다 도모히코를 번뇌에서 해방시켜줌과 동시에 주인공 또한 자신의 내면 세계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 와중에 이중 메타포에서 벗어나 작은 동굴을 탈출한 주인공은 문제의 시발점인 원형의 석실에 도착하게 되고, 자신의 옛 아내인 유즈와 얘기를 나눌 준비를 시작합니다. 이중 메타포가 무엇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열심히 알아보니 '국화와 칼'이라는 일본 사람의 행동과 성격'을 밝힌 루스 F. 베네딕트의 저서가 있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인 '국화와 칼'을 보면 전반부에서는 국화가 '탐미적이고 섬세한 심미주의'를 칼은 '국군주의적이고 공격적인 무력 숭배'를 그리고 있으나 후반부에서 국화는 '자신의 정신적 자유를 제약하는 작위적인 의지'를 칼은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이상적인 인간'을 상징하는 이중 메타포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중 메타포의 은밀한 위험에서 벗어나 개인의 트라우마를 벗어난 주인공은 각성을 통해 다시 가정의 화합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적긴 했는데 이게 재대로 된 해석인지 아닌지는 각자 이 글을 본 분 들이 판단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제 깊이가 아직 얇기 때문에 여러 겹의 레이어 중에 상층부만 보고 해석 된 것 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게 재대로 된 해석이 아닐지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제가 느끼기에는 이랬다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