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감상

페스트

Normal_One 2017. 11. 18. 16:16

 오랜만에 서점에 들려 책을 네 권 사왔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읽은 책이 알베르 카뮈가 쓴 '시시포스 신화'입니다. 그렇게 3분의 1 정도를 읽은 후 책을 다시 덮었습니다. 호기롭게 사기는 했는데 너무 난해하고 내용도 이해가 안가다 보니 이게 책을 읽는 건지 염불을 외는 건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나중에, 물론 다시 안 읽을 수도 있지만 다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른 책이 바로 '페스트'입니다. 페스트도 읽기 좋은 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시포스 신화보다는 나았습니다. 결국엔 다 읽었으니까요.
 
이방인과 비교해보면 이야기 서술구조도 나름 뚜렷하고 보여주고자 했던 것도 분명해 보입니다. 물론 누군가가 저에게 책이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정말 더럽게 재미없고 추천해주고 싶지 않다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서술 방식이 너무 예스럽기 때문 일수도 있고, 단어가 평범한 이과생 출신이 읽기에는 너무 어려워서 일 수도 있겠습니다그리고 김정운 교수님이 말하신 것처럼 전 읽기 좋은 책이 가장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다 읽은 건 아마 알베르 카뮈의 사상에 대한 궁금증 때문 일겁니다. 그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 '부조리'가 제 마음에 아주 쏙 들었으니까요

 이 밑으로는 소설의 내용과 더불어 제 개인적으로 느낀 해석을 적을 예정으로 책을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이나,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바로 백스페이스를 누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첫 시작은 별다른 특징 이랄게 없어 보이는 알제리에 있는 '오랑'이라는 도시의 전체적인 묘사부터 시작됩니다. 여느 항구도시와 특별히 차이 날 것도 없어 보이는 이 도시에서 리외는 의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리외는 아내의 병세가 위중하여 아내를 다른 시의 요양소로 보내게 됩니다. 그 와중에 시의 곳곳에서 쥐떼가 들끓는 특이한 현상이 발견됩니다. 그저 일시적인 재해일 것이라는 사람들의 예측과 달리 이제 쥐들의 죽음에 이어 사람에게서 공통적인 병세가 발병합니다. 시의 모든 의사들이 병을 진단하지만 어떤 병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리외의 동료 의사인 카스텔은 리외에게 이 병이 '흑사병'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둘은 암묵적으로 동의하며 흑사병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결국, 흑사병 혹은 흑사병이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조치가 필요함을 설파하며 오랑 시는 폐쇄 조치가 내려집니다.
 
시의 폐쇄 조치와 더불어 강력한 전염병인 흑사병이라는 부조리에 갇힌 상황 속에서 소설 속 인물들은 다양한 행동을 보여줍니다. 의사 리외는 자신의 아내의 위독함과 볼 수 없다는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환자들의 치료에 최선을 다 합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성인이 되려고 하는 타루는 성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답게 구조대를 조직하여 흑사병에 맞섭니다. 타지에서 온 기자인 랑베르는 연인을 보고 싶어 시를 탈출하려고 하나 이내 자신의 양심에 따라 탈출을 포기하고 구조대 활동을 합니다. 소설가가 되려고 하는 그랑은 흑사병에 대한 기록을 맡았고, 선교 활동에 열을 올리는 파늘루 신부는 어린 아이의 죽음을 보며 이단이 되어가고 결국 흑사병으로 죽습니다. 그리고 부조리에 몸을 맡겨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코타르 같은 인물도 있었습니다.
 
리외의 동료 의사인 카스텔의 혈청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기 시작하면서 점점 흑사병의 기세는 누그러집니다. 그러나, 이대로 쉽게 물러날 수는 없다고 하는 듯이 그랑과 타루에게도 흑사병이 발병합니다. 그랑은 기적적으로 흑사병을 이겨내나 성인이 되려고 했던 타루는 결국 흑사병으로 쓰러집니다. 흑사병이 물러간 후 부조리에 몸을 맡겼던 코타르는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다가 경비대의 총에 쓰러집니다. 그 외에 부조리에 맞선 모든 사람들은 부조리에 대한 자유를 즐깁니다. 마지막으로 리외는 이 이야기의 화자는 자신이었으며, 언제 다시 올 줄 모르는 부조리에 대해 대비하기 위해 이 글을 서술했다고 하며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이방인에서는 개인에게 처해진 부조리를 보여주고, 페스트를 통해서는 다수에게 주어진 부조리를 보여주었습니다. 부조리에 반항하지 않고 몸을 맡긴 코타르 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그를 제외한 여러 사람들이 선한 마음으로 연대하여 부조리에 반항하였고 결국 이겨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시의 폐쇄 조치 해제와 오랑 시에서 물러간 흑사병은 그들이 얻은 훈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이 소설 이 후에 사랑에 대한 서사를 쓰겠다고 했다고 합니다그런 서사를 쓰기 전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서, 그가 쓴 사랑의 서사는 도대체 어떤 형태일까 매우 궁금해집니다혼자 카페에 앉아 멍하게 있으면서 상상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