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제가 '이방인'에 대한 감상을 적을 때 '살인자의 기억법'은 같은 이야기로 다르게 쓰여진 두 개의 소설이라고 생각했다고 적었습니다. 그걸 직접 확인하기 위해 두 권의 책을 다시 꺼내 들어 읽었고 '이방인'에 대한 감상을 먼저 적었습니다. 그러한 까닭으로 이번에는 '살인자의 기억법'에 대한 감상을 적게 되었습니다.
다 읽은 후의 소감을 적자면 김영하 작가가 산문집 시리즈 중 '읽다'를 자신을 작가로 만든 문학작품들에게 바치는 사랑 고백이라 했습니다. 이에 비유한다면 살인자의 기억법은 '이방인'과 '오이디푸스 신화'에게 김영하 작가님이 바치는 사랑 고백이라 느껴졌습니다. 두 얘기를 끌어 들여 새롭게 써낸 소설이 살인자의 기억법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 밑으로는 소설의 내용과 더불어 제 개인적으로 느낀 해석을 적을 예정으로 책을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이나,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바로 백스페이스를 누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이방인의 시작과 유사한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연쇄살인마인
김병수는 올해로 일흔 살의 나이가 되는 노인입니다. 마지막으로 살인을 한 지 20년 정도가 흘렀고, 이제는 알츠하이머 환자가 된 그는 시를 쓰거나
반야심경의 구절을 읽어 외우면서 자신의 입양한 딸인 은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알츠하이머 환자가 가까운
기억부터 잃어버리고 과거만 또렷하게 기억나듯이 현재의 부정확한 기억들과 과거의 또렷한 기억들이 뒤섞여 얘기가 진행됩니다.
사실 은희의 부모들은 그의 마지막 희생양들이었습니다. 은희의 엄마를 살해하고
오는 길에 그는 차 사고를 일으켰고, 그 때 이후로 살인을 그만두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은희 엄마의 간곡한 부탁을 떠올리며 은희를 입양하여 키우고 살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에 주변에서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알츠하이머
환자가 된 그는 자신이 한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신이 한 일이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로 있던
때에 그는 지프를 박는 가벼운 접촉사고를 일으킵니다. 사고 처리를 위해 지프로 다가간 그는 지프 트렁크
사이에서 흐르는 핏물을 보며 지프의 운전자인 '박주태'가
살인범임을 확신합니다. 그러면서 그가 자신의 집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챕니다. 자신이나 은희를 노리는 게 분명하다고 확신한 김병수는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다가올 위협에 대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과거에 대해 회상합니다.
그의 첫 살인은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6.25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장애에 시달리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자주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 그를 폭행했습니다. 성인을
제압하기에 충분한 나이가 된 김병수는 어머니와 누이의 도움으로
베개로 자신의 아버지를 질식사 시킵니다. 그는 어머니와 누이의 도움 없이 혼자 해냈어야 했다며 아쉬워합니다. 그러면서 은희에게 누이의 안부를 묻자 누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습니다.
누이의 죽음도 재대로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김병수의 뇌는 점점 엉망이 되어갑니다. 길을
헤매다 모르는 사람에게 둘러 싸여 있다가 경찰에게 인도되어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자신이 기르던 개에게
돌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는 점점 잃어가는 기억들과 다가오는 다른 살인범의 접근에 두려워하며 다가올
자신의 임상적 죽음에 대해 곱씹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은희가 약혼자를 데려오겠다는 얘기를 합니다. 김병수는 은희에게
결혼은 알아서 하고 약혼자를 데리고 올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은희는 결국 자신의 약혼자를 데리고 옵니다. 그런데 은희가 데리고 온 약혼자는 다름아닌 박주태입니다. 김병수는 박주태를 은희와 함께 만날 때는 떠올리지 못했으나, 곧 자신의 메모지를 보며 깨닫습니다. 그 놈이 자신과 같은 살인자라는 사실을.
박주태가 자신이나 은희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한 김병수는 일흔의 노구를 이끌고 박주태를 미행하기 시작합니다. 박주태를 미행한 김병수는 더욱 그 놈이 살인범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은희에게 박주태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됩니다. 자신이
그의 지프에서 무엇을 봤는지, 그 놈이 어떤 놈인지에 대해서. 그러자
은희는 무슨 얘기를 하고 있냐며 화를 내고 방 안에서 숨죽여 웁니다. 그런 은희를 바라본 김병수는 설득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공중전화로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연쇄살인의 범인이 박주태임을 제보하나 시대가 바뀌어도 경찰은 무능했고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김병수는 생애 최초로 필요에 의한 살인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필요에 의한 살인을 하기로 결심한 김병수에게 안형사와 경찰대 학생 5명이 찾아옵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김병수가 일으킨 연쇄 살인에 대해 언급합니다. 김병수는
겉으로는 짐짓 모르는 척 능청스럽게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이 벌인 살인에 대해 더 상세하게 얘기
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는 과거의 영광에 대해 얘기하기를 참았습니다. 해야 할 일이 아직 하나 남아 있었으므로.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점점 더 김병수의 치매는 심해져만 갑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새로운 약을 계속 먹었으나 점점 더 최근의 일은 까마득해져만 갑니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 때는 박주태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며 어느 때는 안형사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는 마치 박주태를 죽이고 온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박주태를
죽인 것이 헛다리를 짚은 것인지 오히려 은희가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전화를 받지도 않는 날만
늘어갑니다. 걱정과 불안이 휩싸인 현실 속에서 자기 집 개일지도 아닐지도 모르는 누렁이가 잘려진 여자의 손을 물고 옵니다. 김병수는 결국 박주태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경찰에 신고합니다. 자신의
딸이 박주태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마저 잃어버리기 전에. 신고를 받은 경찰들이 김병수의 집으로 찾아오자
김병수는 비닐봉지에 든 잘린 팔을 건네며 범인은 박주태라고 얘기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범인이라고 지목했던 박주태가 경찰들 사이에서 나옵니다. 박주태를
보자마자 김병수는 바지에 오줌을 지려버립니다. 빨리 저놈을 잡으라고 경찰들에게 외치지만 경찰들은 비웃으며
집안 수색을 하기 시작합니다. 상황은 한 순간에 급변합니다. 김병수는
경찰들에게 잡혀와 심문을 당합니다. 심문을 당하는 와중에도 박주태가 범인이라며 우기지만 경찰들은 박주태는
경찰이고 김은희를 죽인 건 김병수 당신이라고 얘기합니다. 또한, 김은희는
김병수의 딸이 아니며 그저 치매 노인들을 간병하던 요양사라고 얘기해줍니다. 또한, 자신이 입양했다고 생각했던 은희는 이미 오래 전 자신의 엄마와 함께 죽어있었습니다. 오로지 혼돈만이 김병수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김병수는
혼돈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 앞 마당을 그만 파고 대나무 숲을 파라고 얘기해줍니다. 그리고 대나무 숲에서는
지금까지 김병수가 죽인 피해자들이 무수히 발견됩니다. 시간이 흘러 심문과 재판이 이어지나
점점 김병수의 현재는 사라져가서 마치 한 점이 되어가고 그 한 점마저 없어져 버립니다. 그렇게 공(空)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렇게 살인자의 기억법은 끝을 맺습니다. 새로운 연쇄살인범인 박주태를 맞이하여
일흔인 김병수는 자신과 자신의 딸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흥미로운 얘기는 공(空) 속으로 사라지고, 김병수의 파멸 만이 남았습니다. 사실 책 뒤에 적혀있는 권희철 문학평론가의 얘기처럼 소설 중간 중간 아귀가 맞지 않음을 보여주는 장치는 많았습니다. 그래서 끝으로 가기 전에 은희도 이 아저씨가 죽인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더한 반전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맨 앞에 이 소설은 '이방인'과 '오이디푸스 신화'에게 바치는 김영하 작가의 사랑 고백이라고 썼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소설 안에 여러 부분에서 두 소설을 차용한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방인이 첫 문장인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와 매우 유사하며 끝 부분에 언급되는 감옥에 대한 내용은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생각하던 감옥과 매우 유사합니다. 또한, 한
남자가 아버지를 죽인 후 파멸로 향하는 내용은 오이디푸스 신화의 이야기 구조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들 덕분에 저는 이 소설이 두 얘기에 바치는 사랑 고백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모두 아는 얘기를 그 만의 해석으로 새롭게 써 내렸습니다.
저 만의 해석으로 이 소설의 중심부를 살펴보자면 결국 '실존주의'에 대한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주 나오는 반야심경의 구절부터
김병수가 떠올리는 여러 명언들, 그리고 김병수가 중간 중간하는 농담들까지도. 허무주의에 따르면 인생에는 우리가
찾으려는 별달리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으며, 그런 허무들을 직시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허무한 현실을 스스로의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심연을 극복하려는 것이 실존주의입니다. 김병수는 치매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연쇄살인범과의 대결도 권희철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운명에 대한 농담으로
응수하려 하나 결국 파멸을 맞이합니다. 김병수가 심연을 극복하기에는 그에게 드리운 심연이 더
깊었나 봅니다, 결국 아버지를 죽인 또 다른 오이디푸스는 운명처럼 파멸해버렸습니다.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실존주의이니 결국엔 죄 값을 치렀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김병수가 외웠던 반야심경의 구절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공空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 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