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감상

이방인

Normal_One 2017. 8. 27. 16:09



  김영하 선생님의 산문집 시리즈 중에 하나인 '읽다'를 읽어보면 이미 다 아는 이야기를 새롭게 쓰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예를 들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어보면 안나 카브레라가 생각나듯이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써야 한다는 얘기겠죠. 제가 이 얘기를 보고 떠 올린 두 소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김영하 작가님이 쓰신 '살인자의 기억법'이고 다른 하나는 알베르 카뮈가 쓴 '이방인' 이었습니다. 왜 생각났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그냥 두 개가 같은 이야기로 다르게 쓰여진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느낌을 확인하기 위해 오래 전에 읽었던 두 소설들을 다시 읽었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도 그렇지만 '이방인' 역시 여전히 저에게 어려운 소설이었습니다. 잘 이해가 가지 않고 중심부를 찾아가기도 힘든, 어쩌면 그 점이 닮아서 두 소설을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방인'을 재대로 이해하기 위함과 동시에 할일 없는 나의 시간을 죽이기 위해 알베르 카뮈와 실존주의에 대하여 공부했습니다. 공부하다 보니 얼핏 소설 속에 풍경들이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소시오패스로 느껴지던 뫼르소가 얼핏 이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공부를 해야만 의미를 알 수 있는 소설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과생인 저의 감수성의 부족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 밑으로는 소설의 내용과 더불어 제 개인적으로 느낀 해석을 적을 예정으로 책을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이나,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바로 백스페이스를 누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영국 텔레그래프가 꼽은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첫 문장들 중 하나로 소설은 시작됩니다. 어머니가 돌아 가셨음에도 불구하고 뫼르소의 반응은 건조하다 못해 거의 무관심합니다. 어렵사리 휴가를 낸 뫼르소는 버스를 타고 긴 시간을 이동합니다. 긴 시간을 이동하여 도착한 양로원에서 말 많은 경비원과 여러 노인들을 만나 얘기를 나눕니다. 다들 어머니의 죽음에 여러 사람들이 애도 또는 비난의 마음을 전하지만 뫼르소는 무관심합니다. 오로지 그는 빨리 이 장례식이 끝나고 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따라서, 모두 모여 기도를 할 때에는 잠에 빠져 들었으며 그 와중에 경비원과 함께 담배를 태웁니다. 무관심함으로 일관한 장례 끝에 뫼르소는 다시 버스를 타고 자기 집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온 후 우연히 예전 직장 동료였던 마리를 만나 해수욕을 즐기고 영화를 보고 사랑을 나눕니다
  
이 후엔 뫼르소와 그의 주변 인물들로 얘기가 전개됩니다. 늟은 개와 애증의 관계에 있는 살라마노 영감과 자신의 정부와 문제가 있는 레몽, 그리고 자신의 애인인 마리와의 데이트. 그 와중에 이들을 대하는 뫼르소는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말하면서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이런 부분을 보면서 제가 뫼르소를 소시오패스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뫼르소는 레몽의 친구가 있는 알제의 별장으로 마리와 함께 놀러 가게 됩니다. 즐겁게 시간을 보내던 와중에 레몽의 정부였던 여자의 오빠들의 패거리를 만나게 되고 한 바탕 소란을 치릅니다. 소란이 일어나는 와중에 레몽은 칼에 배였고 별장으로 다시 돌아와 상처를 치료합니다. 뫼르소는 레몽이 건넨 총 한 자루를 소지한 채 혼자 해변을 걷습니다. 해변을 걷는 와중에 혼자 있는 아립인을 맞닥뜨리게 됩니다아랍인은 아까의 승리로 인해 뫼르소를 보며 미소를 짓고, 뫼르소는 총을 꺼내 듭니다. 당황한 아랍인은 다시 칼을 꺼내 들고 칼에 반사된 햇빛이 뫼르소의 눈을 부시게 만듭니다. 뫼르소는 심한 어지러움을 느끼다가 아랍인에게 총을 발사합니다. 한발, 그리고 다가가서 또 한발모든 총알을 다 쓰고 나서야 멈춥니다.

 
그렇게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는 감옥에 구속됩니다. 감옥에 구속 된 뫼르소는 국가에서 선임해 준 변호사와 얘기를 나눕니다. 변호사는 중요한 의제로 뫼르소의 어머니가 죽은 날에 대해 얘기합니다. 그 날 그가 보여준 무심한 모습을 지적하며 이게 재판에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뫼르소는 이는 재판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자신의 그 날의 상태를 무덤덤하게 말합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변호사는 무척 화를 내며 돌아가버리고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그 후엔 예심 판사와 심문을 가지게 됩니다. 예심 판사는 중요한 의제로 뫼르소가 신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를 꼽습니다. 그러면서 신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뫼르소는 신을 믿지 않으며 그 사실은 이 재판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예심 판사는 자꾸 뫼르소에게 신을 믿으라고 강요하며 이것이 재판과 매우 중요하다고 얘기합니다. 얘기의 얘기를 거듭한 끝에 예심 판사는 그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음에 만날 때부터는 뫼르소가 나갈 때마다 '잘 가시오, 반 기독교 양반'이라는 말을 하며 비꼽니다.
 
이 후는 뫼르소의 지리멸렬한 감옥 생활이 이어집니다. 마리가 면회 온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변화가 없는 감옥 속에서 뫼르소는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렇게 5개월이 지나서야 재판이 시작됩니다. 배심원들이 들어오고 증인으로는 양로원에서 어머니의 남편처럼 살았던 토마 페레, 양로원의 말이 많던 경비원, 자주 가던 가게의 사장인 셀리스트, 자신의 애인인 마리, 늟은 개를 키우던 살라마노 영감, 레몽과 레몽의 친구인 마송이 들어옵니다. 재판은 이어지고 첫 번째 변호사가 말했듯이 중요한 쟁점으로 어머니의 장례식 날이 언급됩니다. 뫼르소의 살인이 계획된 살인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중요한 쟁점으로 장례식 날에 뫼르소가 슬픔을 느꼈는지 아닌지가 언급되는 아이러니함이 나옵니다. 뫼르소는 그 사실은 이 살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므로 덤덤하게 모든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결국 사형을 판결 받습니다.
 
사형을 판결 받은 후 뫼르소는 부속 사제와 면담의 시간을 가집니다. 부속 사제는 예심 판사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믿으라고 강요하며 다른 삶을 꿈꾸지 않았냐고 물어보며 뫼르소의 삶을 부정합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한 행동과 삶에 대해 계속적으로 부정하는 부속 사제를 보며 뫼르소는 참다 못해 소리를 지릅니다. 자신의 삶이 부정당하지 않기를 원했던 뫼르소는 속에 있던 모든 말을 뱉어내고 평온하게 잠이 듭니다. 그 후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에 잠이 깬 뫼르소는 양로원에서 토마 페레 영감과 새로운 결혼 생활을 한 어머니를 떠올리며 이 세상에 가득 찬 부조리에 대해 생각합니다. 세상을 이해한 뫼르소는 자신의 사형 집행장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자신에게 욕을 해주기를 바라며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난해한 이 소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위에 썼던 대로 저는 실존주의에 대해 아주 얇고 넓게 공부했습니다. 실존주의란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존재는 실존과 본질이 합쳐진 것으로 본질 이전에 실존(육체)가 있으며 후천적인 행동으로 본질이 결정된다는 철학입니다. 이는 샤르트르가 얘기해 온 실존주의인데, 여기서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해왔습니다. 부조리 함에 대해 항상 의식하며 이에 대해 반항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을 부조리 인간이라 명명했습니다. 뫼르소는 자신의 재판이 어머니의 장례식 날로 연결되는 부조리를 봤으며, 자신이 믿지도 않는 신을 자꾸 강요당하는 부조리함도 겪었습니다. 부조리함에 반항하고자 그는 부속 사제를 향해 소리를 질렀으며, 사형 당한 후에 많은 이들이 자신을 찾아와 증오의 함성을 지르기를 바랬습니다. 뫼르소는 알베르 카뮈가 주장한 부조리 인간에 딱 맞는 인물이며 반항을 통해 부조리를 이겨내려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공부하며 떠올린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마 수련회 박살낸 고딩으로 검색하며 나올 듯 한데, 수련회에서 부조리를 보고 이에 대해 반항하며 결국 수련회를 박살내버린 고등학생의 얘기였습니다. 알베르 카뮈가 주장한 부조리 인간에 가장 잘 맞는 고등학생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부조리에 대해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때때로 이런 부조리함에 반항하면서 행복을 얻기도 부조리함에 굴복하며 좌절하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부조리함을 타파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