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최근에 방영 된 나영석 PD의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으로 더 유명해지신 김영하 작가의 소설 모음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를 읽었습니다. 여러 단편 얘기들이 묶여 있는지라 읽으면 읽을수록 마치 용변을 보고 휴지로 덜 처리한 듯이 찝찝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좋은 소재들로 왜 더 쓰지 않았을까? 이 후에
남겨진 얘기들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어쩌면
김영하 작가님이 이를 생각하고 쓴 게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남은 얘기들에 대한 것들은 독자들의 상상의
영역 속으로 남겨 두도록. 이렇게 적고 보니 소설 제목도 그런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르니 알아서 상상해라 그런 뜻인 거 같기도 합니다. 물론,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듯이 제가 그럴싸하게
붙인 거긴 합니다. 뭐 아무런들 어떻겠습니까? 산문집인 '보다', '말하다', '읽다'에서 말하셨듯이 느끼는 건 독자 마음대로이니 제 마음대로 해석해도 김영하 작가님이 뭐라 하실 순 없겠죠.
여러 개의 단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리고 가장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통해 책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이 밑으로는 소설의 내용과 더불어 제 개인적으로 느낀 해석을 적을 예정으로 책을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이나,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바로 백스페이스를 누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읽으면서 가장 흥미롭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밀회'입니다. 그 많은 단편 중에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어쩌면 이 이야기 안에 소설의 제목이 들어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주 보는 것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니까요.
이야기의 시작은 한 남자가 독일에서
렌즈를 새로 맞추면서 시작됩니다. 독일에서 렌즈를 맞추는 이 남자는 한 여자와 바람을 피고 있습니다. 둘은 1년에 한 번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같은 호텔에서 만납니다. 이런 관계가 이미 지속된 지 7년이 흘렀습니다. 7년이 지나면서 매일 그녀는 그에게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둘은 또 약속이나 한 듯 푸랑크푸르트에 있는 호텔에서 만나 사랑을 나눕니다.
그녀는 그의 옛 사랑이고, 그녀에게 그는 외로움을 채워주면서도 증오해서 삶을 이어가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그녀가 푸랑크푸르트에 사는 이유는 그녀의 남편 때문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땅딸막하고 다부진 체구에
레슬링을 취미로 하는 사람으로 학교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의 레슬링에 대한 열정은
대단해서, 학교에 건의하여 레슬링 부를 만들고 그 레슬링 부를 몇 년 안 있어 준우승 시킬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그는 레슬링부의 어느 재능 있는 학생을 지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학생이 건 기술에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매트 밖으로 머리부터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픈 내색을 하지 않고 학생에게 가벼운 칭찬을 한 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그에게 이상 징후가 발견되게
됩니다. 집안에 충실했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외박을 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녀는 사방팔방을 수소문하여 그가 머물고 있는 곳을 찾아냅니다. 그에게
따져 물었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녀의 동료에게 수소문한 끝에 그가 주위 모든 사람을 가짜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병원에 들려 검진을 받아보니 그가 매트로 떨어질 때 가벼운 뇌출혈이 생겼고 그로 인해 카푸그라증후군이라는 병을
얻게 되었고 주위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병이 나을 방도는 없었고 결국
해결책으로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해외에서 살기로 결정합니다. 그녀의 남편에게는 이곳이나 외국이나 어차피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사는 것이니 별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푸랑크푸르트로 온 지 3년 후 그와 그녀가 만나게 되고 바람을 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날도 다른 날들과 다르지
않은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녀와 그는 만났고 푸랑크푸르트 거리를 걸으며 데이트를 했고 호텔에 들어가서
사랑을 나눴습니다. 그녀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그에게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이 과정들을 덤덤하게 독백으로 얘기해 나갑니다. 그리고 자신은 곧 떠날 거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라고 혼자 얘기합니다. 그녀가 누워있는 그를 흔듭니다. 그녀는 그가 자주하던 장난인 죽은 척 하기를 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말로 떠났습니다. 이제 다시는 정말 만나지 못할 겁니다. 다시
이 곳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그녀를 사랑할 거라는 그의 독백으로 이 짧은 단편은 끝을 맺습니다.
제가 이 얘기를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이유는 얘기를 읽던 와중에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그녀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 이 남자가 그녀의 남편이 아닐까 하는 상상이 들었습니다. 그녀에 대한 미안함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서 그녀와 바람을 피우는 것처럼 사는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한 생각이 더 들었던
이유는 그의 독백 중간 중간마다 보여지는 김영하 작가님의 서술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가령, 그녀의 남편이 매트에 떨어질 때 얘기를 보면
그러던 어느 날 사긴이 벌어졌습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두사람 모두...
와 같이 정상적이지 않게 끊어서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그도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가 아닐까 하는 위화감이 들었고, 위와 같은 엉뚱한 상상을 한 번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엉뚱한 상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여러 단편들이 모인 책이 바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였습니다. 저 같이 혼자 몽상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몽상의 소재를 제공해주는 그런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