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감상

채식주의자

Normal_One 2017. 6. 25. 14:11


노벨문학상, 프랑스의 콩쿠르 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연방국가에서 맨 부커상을 수상 받은 한강 작가의 작품 '채식주의자'를 읽었습니다. 혜민 스님이 저술한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이후 실로 오랜만에 읽은 책이었습니다. 한 달에 2권 이상은 읽자고 다짐했는데 아무래도 백수일 때보다 한가하지 않아서 그런지 잘 되지 않는군요. '채식주의자'를 읽고 난 후의 제 개인적인 느낌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인 '상실의 시대'를 읽은 것과 비슷한 기분이었습니다. '상실의 시대'가 허무를 주제로 얘기를 풀어나가듯이 채식주의자는 현실과 꿈의 경계를 주제로 얘기를 풀어나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경계가 무엇이냐?라고 하실 분들이 있을 텐데 이에 대해선 밑에 적도록 하겠습니다.

  이 밑으로는 소설의 내용과 더불어 제 개인적으로 느낀 해석을 적을 예정으로 책을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이나,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바로 백스페이스를 누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채식주의자는 총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설의 시간 흐름 상으로 나열되어 있는데 첫 번째 장은 '채식주의자', 두 번째 장은 '몽고반점', 세 번째 장은 '나무 불꽃'입니다. 주요 인물로는 '영혜'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그녀의 형부, 그녀의 언니입니다. 각 인물들은 경계 너머에 있는 꿈(또는 욕망)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있는 인물들로 각각의 장에서 한 명씩 포커스를 맞추어 그들의 태도에 대해 얘기합니다.

첫 번째 장인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남편에 포커스를 맞추어 얘기를 진행해갑니다. 그녀의 남편은 매우 현실적인 사람으로 경계 너머에 있는 꿈에 대해 알지도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인물입니다. 튀지 않고 평범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인물로 가장 현실성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에게도 욕망은 있습니다. 바로 처형에게 품은 욕망인데 소설 중에 그녀를 보고 끌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다만, 그는 위에 적은 대로 꿈에 대해 알지도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인물이기에 이런 욕망을 곧 무시해버립니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그에게 이상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그의 아내인 '영혜'의 채식주의자 선언입니다. 처음에는 참고 지냈지만 평범하게 하루를 보내고 싶어하는 그는 경계 너머에 있는 꿈으로 점차 들어가고 있는 자신의 아내를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 아내가 처가의 식사 모임에서 그녀의 아버지에게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뺨을 맞고 손목을 그어버린 후, 정신병원에 들어가서도 상의를 탈의하고 햇빛을 맞이하고 있는 아내를 보고 나서 아내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끝까지 꿈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그다운 결정이었습니다.

 
두 번째 장인 '몽고반점'에서는 영혜의 형부에 포커스를 맞추어서 얘기가 진행됩니다. 가장 극적인 구성으로 되어있는 장으로 한국에서 가장 호평 받는 장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극적이기도 하고 가장 불편한 장이기도 합니다. 영혜의 형부는 소설 속에 명확하게 얘기가 나오진 않지만 비디오 예술가로 보입니다.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그것을 전시하는 작업을 합니다. 그의 꿈은 그의 아내가 한 몽고반점에 대한 사소한 한마디에서 시작됩니다.


글쎄... 나도 정확한 기억은 없는데. 영혜는 뭐 스무살까지도 남아 있었는걸


 이 말 한마디가 그를 경계 너머에 있는 꿈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예술가였던 그에게 몽고반점은 강렬한 영감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영혜와의 만남을 가집니다. 그녀의 전라에 몽고반점 주위로 꽃을 그려놓고 촬영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후 그는 더 위험한 촬영을 계획합니다. 꽃은 그려 넣은 남녀의 성교 장면을 촬영하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의 작업실 후배인 J를 통해서 시작하나 성교를 거부하는 J를 보곤 결국 그 자신이 직접 꽃을 그려놓고 영혜와 그 자신의 성교를 촬영합니다. 그렇게 그 또한 영혜와 함께 경계를 넘어서 꿈 속으로 밀려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의 등장으로 그는 곧 현실로 돌아옵니다. 우연하게 반찬을 들고 온 그의 아내는 그와 자신의 동생의 촬영 장면을 눈으로 직접 보곤 떨면서 구급 대에 전화를 넣습니다. 그는 결국 영원히 꿈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베란다를 넘어 날아오르려고 하지만 구급 대에 의해 저지되고 다시 현실 속으로 추락합니다.

 
마지막 장인 '나무 불꽃'에서는 영혜의 언니에 포커스를 맞추어서 얘기가 진행됩니다. 그녀는 경계 너머에 있는 꿈을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이런 점에서 1장에 나온 영혜의 남편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경계를 넘어 자신의 꿈 속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져 있는 두 아이(그녀의 아이와 영혜)에 대한 책임감 때문입니다.
 
마지막 장의 시작은 그녀가 영혜가 있는 정신병원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 곳에서 영혜는 점점 꿈속으로 나아가 결국 나무가 되고자 합니다. 처음에는 햇살이 가득한 창가에서 물구나무 서서 나무가 되고자 하고 후에는 아예 음식섭취를 거부하며 죽음으로 나무가 되고자 합니다. 그런 영혜를 옆에서 지켜보는 그녀는 더욱 심란해지고 피폐해집니다하지만, 그녀는 꿈을 꾸기 위해 잠들 수 없습니다. 그녀에게 지워져 있는 영혜와 그녀의 아이에 대한 책임감 때문입니다이런 상황 속에서 그녀의 꿈이 현실로 다가옵니다. 그녀의 꿈 속에서 나무는 불꽃과 같습니다. 무서운 기세로 그녀를 꿈 속으로 끌어당깁니다. 이런 압박감 때문에 굳센 그녀도 죽음으로 이 현실을 도피하고자 하지만 자신만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보면서 현실로 돌아옵니다
 
그러면서 그녀의 삶에 대한 얘기가 이어져가고 영혜씨가 가진 트라우마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서 왜 영혜씨가 나무가 되고자 하는 지를 어렴풋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에서 그녀와 영혜씨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그녀의 심정을 보여주며 소설은 막을 내립니다.


꿈 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
그러니까, 언젠가 우리가 깨어나면, 그때는.....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는데, 아무래도 제가 상실의 시대와 많이 유사하다고 느낀 이유는 상실의 시대 여주인공인 나오코와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인 영혜씨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명은 정신병원에서 자살을 했고, 한 명은 정신병원에서 음식 섭취를 거부함으로 죽으려 하고 있죠.
 
여기에 나온 경계 너머에 있는 꿈을 보는 인물들은 모두 현실에 지쳐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친 현실 속에서 꿈과 현실을 넘나들게 되면서 현실 속에서 탈출하고 싶어합니다. 영혜씨는 나무가 되고자 하고 영혜씨 형부는 날아오르려고 했고 영혜씨 언니는 자살하려고 했었죠. 그러나 '역경을 피해 도망친 곳에 낙원이란 없다'는 듯이 현실 속으로 돌아오면 더 큰 고통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영혜씨의 형부는 가족들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잠적했고 영혜씨의 언니는 나무가 불처럼 강렬하게 느껴지는 현실의 무게 속에서 피폐해져 갑니다.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저 또한 다 버리고 도망쳐 버릴까 싶은 적이 있었지만 그러진 못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냥 버티고 버텨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죠. 그때 제가 다 버리고 도망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영혜씨나 영혜씨 형부처럼 꿈 속으로 아예 들어가 버렸을까요?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잘 버틴 것 같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군요.
 
결국 제가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느낀 점은 잘 버틴 제가 기특하고 현실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구나 였습니다. 제가 좀 더 문학적으로 잘 발달 된 사람이었다면 또 다른 뭔가를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 어떻습니까? 책 내용은 같더라도 모두 느끼는 점은 다른 법이니까요. 이 긴 글을 읽고 답변을 달아줄 이가 누가 있겠나 싶지만은 혹시라도 다 보신다면 본인들은 어떤 점을 느꼈는지 적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